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강 방어선 전투 (문단 편집) ==== 영등포전선 ==== [[파일:/20160218_104/lc0107536_1455802033296AdCKH_JPEG/bandicam_2015-08-04_10-20-42-950_(1).jpg]] 대전차포 소대의 [[옥쇄]] : [[영등포]] 방면의 책임을 맡은 제8연대(장, 서종철 중령)는 정오 무렵에 [[맥아더]] 원수 일행이 시찰하고 수원으로 돌아간 다음, 심기일전하여 방어태세를 가다듬었는데 이때 연대에 제18연대 제1대대와 57㎜ [[대전차포]] 1개 [[소대]]가 증원되었다. 그런데 동 대전차포 소대에 대한 소속과 증원경위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제18연대 제1[[대대]](장, 박철용 소령)는 당초 전 대대가 휴가중이어서 연대 주력과 함께 출전치 못하고 삼각지(용산)의 연대본부에 남아있다가 전날 새벽에 강을 건너, 시흥에서 휴가복귀병력을 수습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제18연대 역시 수도경비사령부의 건제부대였으므로 제8연대를 증원케 된 것인데 이에 [[연대장]] 서종철 중령은 동 대대를 [[안양천]] 동안에 배치함으로써 새로이 연대의 좌일선으로 삼아 이로 하여금 [[김포시|김포]]쪽에서 적 급습에 대비토록 하고, 연대의 제1, 제3 양대대로써 [[여의도]]정면 방어에 주력케 하였다. 그리고 대전차포 소대는 제3대대의 화기 [[중대장]]이 이를 지휘하여, 영등포의 동양맥주공장 남쪽의 고개에 포좌를 설치하였다. 이와 같이 하여, 혼성 [[수도기계화보병사단|수도사단]](장, [[이종찬]] 대령)의 영등포 정면에도 전력의 보강을 보기는 하였으나, 아직은 1개 연대의 실력에도 미치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정오를 넘어서자 적이 뗏목을 타고 하중리 나루터 부근에서 여의도의 북단인 율도(밤섬)로 산발적인 도하를 시작하였다. 이때 대안의 당인리에 방열된 적포가 그들의 도하를 지원하였는데, 연대는 이 적화를 제압하고자 하였지만 연대의 중화기인 81㎜ [[박격포]]로서는 그곳까지 사거리가 미치지 못하였다. 이에 연대는 낮 동안 적의 [[여의도 비행장]]으로의 접근을 막은 다음, 해가 진 뒤에 그들의 적 진지를 복멸키로 하였다. 즉, 제3[[대대]]의 화기 중대장인 김인식 중위가 대전차포 소대를 여의도로 추진하여 화력으로 급습토록 한 것이다. 이에 동 소대가 어둠 속에서 포 4문을 끌고 여의도의 서북쪽 구릉지대로 들어가, 적진을 향하여 회심의 일탄을 가하였는데, 이것이 연대정면의 적진에 작렬된 첫 포탄이었다. 그러나 아군의 환호성속에서 연달아 10여발을 사격하였을 무렵, 적의 포화가 그 포진지에 집중됨으로써 2시간 동안 여의도의 서북단 일대는 불바다가 되고, 동 소대는 마침내 한명도 남지 않고 전사하고 말았다. 이 동안에 율도에 도하거점을 확보한 적이 그들의 포화에 힘입은 듯이 김포가도쪽으로 공격함으로써 [[여의도]] 백사장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이에 동 가도의 제방에 연하여 1m 간격으로 호를 파고 진지를 점령한 장병들은 각자 허리띠를 풀어서 옆 사람과 연결하여 설렁줄을 만들어, 서로 독려하면서 도하하는 북한군을 막아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